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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ternité와의 첫 만남

éternité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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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적자생존은 진화론의 핵심 개념으로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강한 생물들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도태되어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체육 부분에 '0'이 쓰여 있는 성적표를 보며, 교과서에 적혀 있던 진화론을 떠올린 소라는 마음이 밑바닥 끝까지 우울해졌다. 소라는 묵묵히 책가방을 챙기고선 집을 향해 걸어갔다.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에선 체육 성적 또한 성적 총점에 포함되었다. 필기시험을 아무리 잘 보았다고 한들, 체육 시험에서 난 구멍은 소라의 등수를 중하위권으로 내려보내기에 충분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친구들과는 달리, 소라에겐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변해보려는 시도를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가벼운 운동조차도 소라에겐 세상이 뒤집어질 듯 과했다. 만일 현대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하지 못했다면, 소라는 지금의 생활조차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진료 기록에 적힌 기나긴 병명은, 마치 이 아이는 진작에 도태되어야 했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소라는 무력감을 쫓아내려는 듯, 길가의 돌멩이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콰당……
소라는 정면에서 덮쳐온 박스에 부딪혀 넘어졌다. 주저앉은 소라의 눈에선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미안해, 박스 때문에 앞이 안 보이는 바람에…… 괜찮니?" 움직이는 박스 뒤에서 나온 중년의 남자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괜찮으면, 내 카페에 와서 쉴래? 미안해, 핫초코라도 만들어 줄게."
"아뇨…… 괜찮아요……"
"……카페에 반창고가 있단다. 손바닥에 상처가 났던데, 그대로 둘 수는 없잖니." 남자는 박스를 내려놓고선 소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의 질긴 권유 끝에, 소라는 결국 그와 함께 카페로 향하기로 했다.
"나나미 점장님! 한 노인분께서 스마트폰으로 주문하시려다가, 실수로 카푸치노를 100잔이나 주문해 버렸어요! 그런데 이미 취소 시간이 지나 버려서, 점장님이 좀 확인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카페에 들어서자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종업원이 다가오며 말했다.
"알았어, 지금 갈게." 점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소라를 빈자리에 앉혀놓고는 말했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 줄래? 금방 다녀올게."
멀어져 가는 점장의 뒷모습이 다다른 곳에는, 도움을 구하는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딱 보기에도 전자기기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비비는 두 손에서 막막함이 드러났다.
소라는 근처에 앉은 젊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남을 바라보는 건 조금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었으나, 상대는 전화에 온 신경을 쏟고 있던 탓에 소라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 실수입니다…… 중요한 데이터를 잘못 기입한 제 잘못이에요……"
젊은 여자는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소라는 여전히 전화 저편에서 내지르는 고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카페에 있는 모든 이들에겐 각자의 고충이 있는 듯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교차하며, 소라의 기분은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핫초코 한 잔이 소라의 앞에 나타났다. 어느새 돌아온 점장의 손에는 반창고까지 들려 있었다.
핫초코에서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김이 소라의 생각을 흐리게 만들었다. 왠지, 누군가에게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괴로워서요. 저처럼 체육에서 항상 빵점을 맞고, 계속 중하위권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학생은 실패한 거겠죠……"
점장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무언가를 알아챈 듯 손을 뻗어 소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삶에는 여러 모습이 있단다. 좋지 않은 부분만 바라본다면 세상은 씁쓸하기만 하겠지." 점잖은 미소를 지어 보인 점장은, 반창고를 손바닥에 붙여 주며 말을 이어갔다. "저 할아버지께선 비록 전자기기는 잘 못 다루시지만, 사람들이 극찬을 하는 유명한 화가란다. 저기 계신 여성분께선, 음…… 비록 수학엔 영 소질이 없어서 잔돈을 잘못 내는 일이 많으시지만, 글쓰기에는 소질이 있으신 덕에 캣챗에서 적잖은 팬들을 지니고 있지. 얼마 전에 글 쓰는 일이랑 관련된 일을 구해서, 이제 곧 지금 직장에서 사표를 낸다고 하시던데."
"모든 사람들에겐 잘 하는 일과 못 하는 일이 있는 법이란다. 신님조차도 예외일 수는 없지. 모든 게 완벽한 팔방미인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한단다, 소라야."
"콜록콜록…… 그, 나나미 점장님은 저를…… 아시나요?"
"하하, 나는 레이나의 삼촌이란다. 레이나는 네 친구인데, 혹시 기억하니? 저번에 레이나를 데리러 갔을 때 만났던 것 같은데."
점장은 핫초코를 소라의 앞에 밀어 주며 말했다. "레이나 말로는, 성적 발표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던데. 지금 보니 체육 성적 때문에 곤란했던 모양이구나."
"제가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걸요……" 소라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방금 말했듯이, 모두에겐 각자의 영역이 있는 법이야. 이한시에는 학생들이 잔뜩 있지만, 초등부 큐브 대회랑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계속해서 우승을 차지한 아이는 너뿐이란다." 점장의 목소리는 소라의 기분을 차분히 어루만지는 듯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아저씨도 소라가 중등부 우승을 거머쥐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단다."
소라는 그곳에 앉아, 아저씨가 자신에게 건네 는 따뜻한 격려를 들었다. 비록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끔은 낯선 이의 격려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 법이다.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귓가에서 아른거리고, 핫초코의 달콤함이 가슴에 스며들며, 풍부한 커피향이 주위를 감돈다. 소라의 마음은 그렇게 사르르 녹았다.
"노력해 볼게요." 소라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뒤로, 소라는 체육 성적에 얽매이는 대신 수학을 배우는 데에 더욱 노력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éternité에는, 큐브를 좋아하는 단골손님이 한 명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