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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스태프의 안내를 기다리자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괜히 돌아다니다 넘어질 것을 우려해 의자에 앉아 불빛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라는 스태프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관객들은 스태프들에게 정전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예상보다 긴 어둠이 지속된 탓인지, 사람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관중 A
[관중 A]내보내 줘! 집에 보내 줘……
가장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어둠을 특히 무서워하는 듯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의 멘탈이 버티지 못했고, 결국 큰 소리를 치며 일어섰다. 공연장을 벗어나려는 듯하다.
극장 스태프 B
[극장 스태프 B]손님, 예비 전력이 곧 가동될 테니 너무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관중 A]나 여기 있기 싫어, 집에 가게 해 줘…… 집에 갈 거라고~!
[극장 스태프 B]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손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스태프가 손전등을 흔들며 다가오자 그녀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출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나는 그녀의 조급한 발걸음을 미처 피하지 못해, 여러 차례 밟히고 말았다.
[player]쓰읍……
[아케치 히데키]PLAYER씨, 괜찮아요?
아파하는 내 신음 소리에, 히데키는 곧바로 휴대전화에 달린 손전등을 켰다. 희미한 불빛 아래, 내 신발 위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이 눈에 띈다, 이건 방금 그 사람이 남긴 '걸작'임이 분명하다.
[player]하이힐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랬음 바로 병원행이었겠지.
[아케치 히데키]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다음에 또 초대한다면 꼭 희극을 선택할게요.
[player]그래. 근데 지금 이 상황, 자칫하면 사람들이 전부 빠져나가버리겠는데.
빠져나가는 사람이 생기자 곧이어 다른 사람들도 극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지속된 정전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났고, 패닉에 빠진 몇몇 관객들에 의해 현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조급해하지 말고 자리에 있어 달라는 스태프들의 외침에도, 공연장을 빠져나가려는 이들은 점점 많아졌고, 이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어나 출구를 향하기 시작했다.
발소리, 부딪히는 소리, 휴대전화를 떨어뜨리는 소리…… 갖가지 소리가 뒤섞였다, 극장이 이런 혼란에 휩싸인 것은 창설 이래 처음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관객은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퇴장하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관객들이 퇴장하는 사이, 예비전원이 들어오며 공연장이 다시 환해졌다.
만석이던 좌석들은 어느새 텅텅 비어버렸고, 비어 있어야 할 통로는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을 계속할 수 없을 게 뻔했다.
[player]……
다른 사람을 신경 쓸 마음이 사라지자, 나는 히데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혼란에 빠진 관객들과 달리 시종일관 잔잔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역시 분명 방금 전까지 어둠 속에서 고뇌하고 있었던 만큼, 그 미소는 내게 그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 가면 아래에 감춰진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극장 안내 방송]관객 여러분, 관람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논의를 거친 결과, 본 극장은 진행 중이던 공연을 취소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일주일 내에 새로운 공연 일정을 안내하겠습니다. 만일 새로운 공연 일정과 시간이 맞지 않으실 경우, 극장 매표소에서 환불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극장 안내 방송]이번 정전 사태로 인해 불편을 겪으신 모든 분들께, 극장의 모든 관계자들을 대표해 사과드립니다.
때마침 극장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며 떠나려는 관객들에게 극장을 나갈 적절한 구실을 만들어주었다. 무대의 막이 천천히 내려가며 뒷정리에 여념이 없는 배우들의 모습을 가려주었다. 아쉽지만 귀공자와 평민의 로맨스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오페라를 볼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 나와 히데키는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을 따라 오페라 극장을 떠나야 했다.
[아케치 히데키]아직 시간이 이르네요, PLAYER씨, 뒤에 일정이 없다면 커피 한잔 하실래요? 이번 정전에 대한 사과 차원으로 대접하고 싶네요.
[player]풋, 극장이 정전되는 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일이야, 네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 그렇게 사과할 필요 없어.
[아케치 히데키]어찌 됐든, 제 불찰입니다. 이후에 오늘 일을 추억할 때 정전 사건만 기억하시진 않길 바래요.
히데키는 인상을 쓰며 어떤 난제에라도 부딪힌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히데키는 내가 오늘 일을 어떻게 기억할지 굉장히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진지한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히데키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player]인생은 원래 변화무쌍해서, 뜻밖의 행운과 뜻밖의 불행 중에 어떤 게 먼저 올지는 아무도 몰라. 정전 사태가 우리의 만남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오페라잖아.
찬바람은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우리 곁을 지나간다. 눈으로 가득 덮인 상록수 나무의 가지가 마침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기울어졌다. 눈송이가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흩날리거나 수직으로 떨어졌고, 이내 바닥에 우르르 쌓여갔다.
내가 허둥지둥하며 눈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자, 히데키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케치 히데키]그렇군요, 그럼 표현을 바꿔 볼게요. 전 PLAYER씨랑 좀 더 오래 있고 싶은데, 혹시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player]당연하지,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점원]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까요?
[아케치 히데키]늘 먹던 걸로 주세요. PLAYER씨는요?
[player]같은 걸로.
[점원]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히데키가 데려온 커피숍은 우아한 빈티지 컨셉의 가게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인테리어였다. 눈부신 플로어 창문 앞에는 정성껏 키운 화분이 놓여 있었고, 벽을 비추는 조명이 햇빛과 뒤섞여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player]저 점원이 널 아는 것 같던데, 자주 오던 곳이야?
[아케치 히데키]한동안 안 왔어요. 예전엔 마작부 모임이 있으면 커피숍에서 모였었는데, 부원들이 여기 디저트를 정말 좋아했어요.
[player]어쩐지, 익숙해 보이더라.
히데키의 선택을 받은 곳의 디저트라면 분명 특색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몇 마디 흥얼거렸다.
[아케치 히데키]잘 부르시네요.
히데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칭찬을 건넸다.
[player]너도 이 노래 들어 봤어?
[아케치 히데키]흠, 최근에 유행하는 노래잖아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있어요.
[player]아케치 부장이 유행곡도 들을 줄이야, 좀 의외인걸.
[아케치 히데키]그건…… 흠, 가끔은 듣죠.
히데키는 두 손을 맞잡곤, 손바닥을 아래로 꾹꾹 누르는 동작을 취했다. 나의 광범위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 행동은 많은 사람이 자신이 없을 때 취하는 미세한 반응 중 하나이다.
나는 방금 전에 했던 대화를 돌이켜 봤다. 내가 뭔가를 잘못 말했던가? 사실 히데키는 유행 하는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