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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왼쪽으로 보낸다

죠의 마음 속에서 이 각각의 선택지에 어떤 깊은 뜻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 생각만을 얘기하자면, 아무래도 왼쪽으로 가는 편이 가장 피해가 적은 선택이겠지.
[player]왼쪽으로 가는 걸 택하겠어…… 그쪽이 가장 피해가 적을 테니까.
[죠]왼쪽이라…… 왼쪽으로 가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보도록 하지요.
[죠]당신은 왼쪽의 건장한 일꾼을 희생하기로 했습니다. 갈림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거장이 있던지라, 당신은 열차를 멈추고 다섯 노인을 구해내 열차에 태우고선 여정을 계속하지요.
[죠]갑작스레 사람이 다섯 늘어버린 열차에선, 본디 딱 맞았을 물자들이 부족하게 됩니다.
[죠]처음엔 다들 각자의 몫에서 일부를 절약해 노인들에게 나눠줬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이 다섯 노인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아채지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뿐만이 아니라, 노인 공경 같은 도덕적 문제를 내세우며 사람들로 하여금 노인들을 위해 일하라 강요까지 하네요.
[죠]게다가 노인들은 약품 또한 젊은이들보다 훨씬 많이 소모하는지라, 열차에 있던 의약품들은 빠르게 바닥을 드러냅니다. 물자가 부족해지니 분쟁이 따라오고, 젊은이들은 더 이상 꿈을 얘기하는 대신 생존을 위해 다툼을 시작하게 되었네요……
[죠]어느 날, 노인 하나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열차의 문에서 그의 옷조각을 발견했을 때,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죠]"어젯밤에 화장실을 가다가, 누군가가 저 할아버지를 열차에서 밀어버리는 걸 본 것 같아."
[죠]이 말은 아무래도 모두의 마음속에 깊이 박힌 모양입니다. 그 뒤로 며칠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모든 노인들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네요. 열차는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종전의 평화를 되찾게 되었답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내게 다가오더니, 귓가에 대고 소근소근 입을 열었다.
[죠]이게 과연, 피해가 가장 적은 방법이었을까요?
이야기의 전개가 조금 예상 외였던지라, 나는 생각에 잠겼다.
[player]당신은…… 그때 무슨 선택을 했죠?
[죠]저 말인가요? 후후, 물론 오른쪽을 골랐지요. 이러면 모두가 밝은 미래를 얻게 되잖아요? 게다가……
[죠]한 사람을 희생시키든, 다섯 사람을 희생시키든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답니다. 어느 쪽이든 사람을 죽인 망나니인걸요. 유일한 차이점은, 어떤 희생이 더욱 유의미하느냐 뿐이랍니다.
[player]음…… 그러니까 오른쪽을 선택한 건 일꾼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Soul이란 이름의 열차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죠]그렇답니다.
죠가 Soul을 배신한 이유는,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이게 만약 죠가 Soul을 떠난 이유라면, 배신이라고 부르는 건 옳지 않을 수도 있겠지.
[player]어째서……
[죠]쉿.
그는 '조용' 하는 제스쳐를 취하며 내 질문을 가로막았다.
[죠]당신께서 사라의 편을 들길 선택했다면, 앞으로의 말은 저 같은 '배신자'에게 묻기엔 적절하지 않겠죠.
[죠]하지만, 제 놀이에 진심으로 어울려 주셨으니 저 또한 그에 상응하는 예를 갖추겠습니다. 이게 바로 당신들이 원하던 것이랍니다.
죠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새로운 편지를 꺼내 내게 건네 주었다. 저 평범해 보이는 양복 아래엔 무슨 도라X몽의 4차원 주머니 같은 거라도 들어 있는 모양이다.
[죠]같은 '망나니'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언젠가는 당신께서도 더욱 유의미한 희생을 택할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편지를 들고 공원을 나가자, 힐리가 길가의 나무에 기댄 채 잔뜩 짜증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편지를 전해준 피에로가 가련하게 쪼그린 채로 세상 다 살기라도 한 듯한 불쌍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날 발견하는 순간 눈에 생기가 돌아오는 듯하더니, 재빨리 몸을 일으켜 도망치듯 공원으로 달려갔다.
내가 돌아오는 걸 본 힐리는 딱히 그를 잡으려 들진 않았고, 대신 날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어서 말하라고 재촉하는 듯한 눈빛을 받은 나는, 방금 있었던 피에로와의 대화를 간단히 전달해 줬다. 물론 그 열차 이야기도 포함해서.
내 얘기를 들은 힐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린 듯했다.
[힐리]죠한테서 대강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게 내가 전부 알려줄게.
나와 힐리는 길가의 벤치에 앉았다. 힐리는 왠지 조금 감상적인 표정이었다.
[힐리]죠랑 나는 Soul의 2대 단장인 '시드'가 거둬준 아이야.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고, 춤을 사랑해서 함께하게 됐을 뿐인 사라랑 달리, 우린 어릴 적부터 극단이랑 같이 사방을 떠돌면서 온갖 인간 사회의 모습을 봤지.
[힐리]하지만 함께 있었던 시간만 가지고서 사라가 Soul에 품은 애정이 우리보단 적다고 할 순 없겠지. 사라는 착하고 쾌활한 데다가, 다가가기도 쉬워서 모두가 좋아하고 있어.
[힐리]시드랑 사라는 둘 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받은 교육도 비슷했어. 그래서 문제를 대하는 태도 또한 유사했지. 따라서, 차기 단장으로 시드는 사라를 골랐어. 차기 단장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죠가 보기엔 이 모든 것이 사라에 대한 시드의 편애였던 거야.
[힐리]너도 알겠지만 Soul은 일 년 내내 세계 각지에서 순회 공연을 하는데, 초대 단장 때부터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를 거두는 전통이 있었어. 그리고 오래 함께하다 보니 Soul의 모두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보다는 가족에 더 가까운 사이가 됐지.
[힐리]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었어. 나쁜 점이란 바로 지금의 Soul엔 노동력이라곤 거의 없는 어르신분들이 많아서 가계가 갈수록 빠듯해진다는 거였지…… 사라가 단장을 맡게 됐을 땐 이미 적자를 보는 중이었고, 공연도 그저 생계를 위해서 하게 되었어.
[힐리]죠는 진작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고, 오랫동안 고통받느니 힘들어도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좋다고 봤어. 그 사람들이 Soul의 짐짝이 되게 하느니, 차라리 Soul을 떠나게 해서 각자의 살길을 찾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 거지.
[힐리]하지만 사라는 Soul을 집으로 여기고, 동시에 멤버들을 가족으로 여겼어. 그렇기에 그들이 남아있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아무리 단장이라고 해도 권리가 없어.
[힐리]시드 또한 죠의 급진적인 면모와 사라의 포용적인 면모를 고려한 다음에야 단장의 자리를 사라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한 거고.
[player]그럼 넌?
[힐리]나?
[player]넌 단장이 되고 싶지 않았어?
[힐리]난 혼자 행동하는 게 익숙해서, 단장이란 지위는 나한테는 번거로운 일이었지.
[player]그럼 죠랑 사라의 의견 차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힐리]사실 짐승들도 병들고 약한 개체를 버려서 무리를 지키곤 해, 자연에선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지. 그래서 나도 죠랑 사라의 생각을 가지고 누가 맞다 틀리다 따지진 않을 거야. 다들 그저, 서로 다른 방법으로 Soul을 지키고자 했을 뿐인걸. 나 또한 나만의 방법이 있고.
[힐리]내가 사라의 곁에 남는 걸 선택한 이유는, 사라가 Soul을 위해서 더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 사람이라고 내 직감이 알려줬기 때문이야.
[힐리]자, 그럼 이야기는 여기서 끝. PLAYER, 넌 항상 주관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느 편을 들어 달라고는 하지 않을게, 그냥 네가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계속 해 줬으면 좋겠어.
[player]응, 알았어.
나와 힐리는 이 주제에 대해 더 파고들지 않고 잠깐 침묵했다가 죠에게 받은 편지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손으로 그린 지도 한 장이 들어있었다. 익숙한 그림체를 보아 죠 본인이 직접 그린 것 같았다.
거리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고, 우린 목적지가 도시 동부의 어느 곳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어제 갔던 '까마귀'의 업소에서도 겨우 몇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나와 힐리는 지도를 소우무에게 보여 주기로 결정했다.
까마귀'의 업소에 도착했을 땐, 우리가 소우무와 약속했던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나는 오는 길 내내 머리를 굴려 약속 시간에 늦은 걸 뭐라고 해명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지도를 소우무에게 보여 주고선 "자, 여기 수상한 곳을 찾았어요" 라고 말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업소 입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조금 예상 밖이었다. 도로 양측에 두 무리의 사람들이 대치 중이었는데,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한지 감히 아무도 그 사이로 지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주요 도로가 아니라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교통 방해로 인당 5000코인씩 벌금을 물었을 것이다.
박새가 저 멀리서 우릴 발견하더니, 급히 우리를 불러 함께 소우무의 뒤에 섰다. 나는 낮고 무거운 목소리고 무슨 상황인지 물었고, 힐리는 표정을 굳힌 채 전방을 노려보았다.
[player]무슨 일이야, 이거?
[박새]맞은 편은 우리덜이랑 계속 사이가 안 좋았던 그 '효' 놈들이지라. 막되먹은 정보상인 놈들인디, 겁 먹을 필요 없쇼.
[player]뭐 하러 온 건데? 싸우러? 조직들끼리 전쟁이라도 하는 거야?
[박새]아아, 그거야 느그 일 때문이제. 어디선가에서 너희가 '까마귀'한테 두루미를 찾는 걸 도와달라 부탁했다는 걸 주워 듣고선, 즈그들 쪽에도 정보가 있응게 우리 보스헌테 생색을 내려고 공짜로 알려 주겠다면서 저러는 거여.
[player]너네 보스가 승낙했어?
[박새]당연히 아니제, 그래서 여기 서있잖여.
[player]아, 분위기 살벌한 건 너도 알지?
[박새]나가 바보인 줄 아쇼잉?
만약 그게 이유라면……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소우무에게 보여줬다.
[player]여기, 보세요. 수상한 곳을 찾았어요.
이 핑계를 고민한 보람이 있다, 역시 나야.
그런데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 중, 맨 앞에 있던 모자 쓴 청년이 뭔가 재밌다는 듯 나를 흘깃 바라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PLAYER.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길래 조금 놀랐다. 사실 더 놀란 부분은, 박새도 깜짝 놀라며 마치 내 이름을 처음 알았다는 것마냥 날 바라봤다는 점이었다.
조금 의아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바라보았다.
[player]날 알아?
[???]물론이지.
상대는 웃음을 흘리더니, 박수를 두어 번 쳐서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뒤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주목! 지금 여러분들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 유명한 "혼천 신사 무녀의 보호자이자 아사바 고등학교 학생들의 친구, 극단 Soul 의 명예 핵심 멤버, 샘 그룹의 VIP, 사이온지 카즈하의 유일한 제자, 카페 'éternité' 의 명예 고객, 아오츠유 중학교의 친절한 선배이자 중앙 공원 아이들의 우두머리이며……"
와우, 내 칭호가 이렇게나 길 줄은 몰랐는데, 괜히 미안해지게 말이야. 하지만, 그래, 놀랍지만 저건 사실이다. 더 말해 달라고, 듣기 좋으니까.
[소우무]너희들은 이제 여기서 볼 일 없다.
지도를 막 다 읽은 소우무는 마치 이 화끈한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상대의 말을 끊었다. 아쉽네, 아직 모두에게 들려줄 내 칭호들이 한참 남았는데 말이야.
소우무는 앞을 향해 손에 들린 지도를 흔들었다. 어조에는 비웃음 3할, 무시 4할, 냉담함 2할과 의기양양함이 1할쯤 섞여 있었는데, 어쨌든 눈앞의 청년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소우무]이런 흔해빠진 정보들까지 가지고 나와 생색을 내다니, 쿠츠지. 어째 숨 쉴 때마다 더 퇴보하는 것만 같군.
그러나 상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그저 시선을 내게로 보낼 뿐이었다.
[쿠츠지]쟤가 말했으니까, 따로 내 소개는 하지 않을게.
[쿠츠지]PLAYER, 사실 나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지. 소우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도 할 수 있고, 소우무가 할 수 없는 일도 내가 할 수 있거든.
[쿠츠지]어때? 앞으로의 일을 내가 도와주는 건?
그가 이 말을 내뱉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내 옆 30cm 거리에 있던 소우무는, 맹렬한 눈빛과 팔뚝의 팽팽한 근육으로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날 두 조각 내버리겠다고 압박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