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이며, 치안도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방금 같은 상황은 보통 이한시에서 한번을 볼까 말까한 광경이었다. 특히 준법 정신 투철하고 선량한 모범시민인 나라면 더더욱이나 말이다.
이성은 내게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눈앞의 상황을 잘 파악하라고 경고한다. 과연, 내가 저 앞의 사람들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이건 마작이 아니라, 육탄전이라 부를 수 있는 싸움인 것이다. 만약 힐리와 나한테 저놈들에게 맞설만한 힘이 없다면, 물러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머뭇거릴 때, 힐리가 손을 뻗어 날 옆으로 밀어냈다.
[힐리]물러서, 방해되니까.
힐리는 그렇게 말하고선 저 무리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로 험한 말 좀 주고 받다가 싸울지 언제 싸울지를 결정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면 나는 그 틈을 타서 힐리를 데리고 도망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 힐리는 깡패 앞에 멈춰 서더니 그대로 채찍을 뽑아 건장한 사내의 몸을 그대로 후려쳤다.
나는 이제껏 힐리가 동물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에게 휘두르는 채찍에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음이 느껴졌다. 바깥에 드러난 살갗에는 빨갛다 못해 거의 보랏빛에 가까운 선이 그어졌다.
싸움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네댓 명이 엉켜 싸울 뿐인데도 열댓명이 싸우는 것처럼 혼란스러워보였다. 심지어 힐리는 놈들을 혼자 상대하면서도 여유만만해서 딱히 내 도움은 필요 하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내가 나섰다가는 괜히 혼란만 안겨다 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거운 바위가 나의 마음 속을 짓누르는 듯 했지만, 나는 그들로 부터 약간 거리를 두기로 했다.
싸움판에서 가장 크게 다치는 건 종종 그 주변의 구경꾼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난 괜히 휘말리지 않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힐리]PLAYER!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던 와중 힐리가 갑자기 내 이름을 외치는 걸 듣고선 고개를 들어 보니, 야구 방망이가 내 눈앞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힐리는 잽싸게 채찍을 휘둘러 방망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하지만 채찍이 아무리 빠르다 한들, 날아오는 방망이를 쳐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눈앞은 캄캄해졌다.
역시, 싸움 구경이 가장 위험하다니까.
내가 눈을 떴을 땐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다. 깡패들은 눈두덩이가 탱탱 부은 채로 벽 앞에 한 줄로 엎드려 있었다.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힐리가 이미 심문을 끝낸 모양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놈은 '박새', 나머지는 그 부하들. 그리고 모두가 '까마귀'의 조직원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멍한 머리를 긁적이며, 발밑에 떨어져 있던 방망이를 줍곤 박새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player]뭐 때문에 힐리한테 귀찮게 굴었던 거야?
[박새]지금 뭔소리 하냐. 우리가 귀찮게 굴었다고?
[박새]거 참, 난들 알것어?
[박새]누가 누굴 귀찮게 했다 그러냐? 우리는 암것도 안했는디, 쟈가 달려와서 먼저 공격한 것이여.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매우 놀랐다. 내 생각과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인데.
나의 상상: 힐리는 Soul로 공연을 하러 가던 길에 '까마귀' 무리를 만나 싸움에 휘말렸다.
실제: 힐리는 Soul로 공연을 하러 가던 길에 '까마귀' 무리에게 싸움을 걸었다.
[평범 건달]박형, 저 나쁜 놈들이랑 말을 해서 뭐합니까, 저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는데!
[마른 건달]맞아요, 박형. 저희 '까마귀'가 이런 수모를 겪는 게 말이나 돼요?
내가 사건의 전말을 잘 모른다는 걸 눈치채자, 엎드려 있던 녀석들이 하나둘씩 리더인 박새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얻어맞았으니, 누구라도 기분이 나쁘겠지.
[박새]느그들은 조용히 하고 있어잉. 나가 지금 몰라서 이러겠소? 우리가 이겼으면 이렇게 말로 할 필요도 없었어.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눈치가 빠른 걸 보니 박새가 놈들의 리더인 것 자체는 이해가 갔다.
[박새]우리는 있잖소, 보스가 시켜가꼬 여기를 지나는 중이었는디… 인자 너거들도 상황은 파악됐겄지?
[박새]계속 이런 식으로 싸움 걸어재끼면 우리 까마귀도 가만히 못있제.
[힐리]하.
내 옆에 서 있던 힐리가 가당찮다는 듯 피식 웃더니, 손에 든 채찍을 공중에 세차게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니 또다시 '교육'을 시작해 버릴 것만 같길래, 난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player]여자 무사 힐리, 참아 참아.
[player]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그냥 말로 해 줘, 내가 대신 해결해 줄게.
[힐리]흥! 쟤네한테 물어보던가.
이쯤에서 나는 뭔가 무력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게임을 할 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NPC 둘 사이에서 대신 말을 전해 주며 고생하는 그런 기분. 아무래도 난 착한 시민으로 사는 이상 이런 퀘스트에서 벗어나지 못할 운명인가 싶다.
[player]에…… 박새, 그래서 당신은 뭘 하러 가던 중이었는데?
[박새]'까마귀'의 일을 외부인한테 말할 수는 없는 법이지라.
박새의 말을 들은 힐리는 다시 채찍을 쥔 손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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